현실의 점프는 현재 매너리즘에 빠져있다. 물론 그게 굳이 나쁘다는 얘기는 아니다. 간판작품 '원피스'의 경우 부단히 단행본 판매기록을 갱신하고, 2억부 고지를 돌파했으니까.
하지만 원피스 외에는? 살려내는 작품이 거의 없다. 귀재 토가시는 언녕부터 점프식 연재방식에 회의를 느끼고 건성으로 대응하고있고(그만큼 점프 편집부가 유유백서때부터 토가시를 많이 쥐어짰으니까. 사실 토가시가 진짜로 그리고싶은건 레벨E같은 소년공식을 벗어난 작품이겠지만.)이에 따라 헌터X헌터는 이젠 어떻게 전개되든 아무래도 상관없는 분위기. 나루토는 2부부터 재미가 급격히 떨어지고 파워 인플레를 감당못하는 점프 고질병에 걸렸으며, 은혼의 경우는 중간중간 삽입되는 점프식 중2병 스토리가 작품 특유의 아저씨 루저 코드를 망치고있다. 나머지 고만고만한 구태의연한 전개의 소년만화들, 이름을 기억하기 조차 어려운 만화들이 뒷받침해준다. 그중에서 원피스나 나루토같은 히트작이 나오면 좋고 생각대로 안나오면 짤라버리고. 뭐 이런식이다. 점프가 너무 황금기에 대한 기억에 집착을 하는게 아닌가 싶다.
물론 개인적으로 소년만화가 재미없어서 원피스마저 안보고있지만.
유일하게 점프 연재작중 챙겨보는게 바쿠만이다. 데스노트의 명콤비(데스노트 2부는 정말 깼지만;)가 만화가의 이야기를 다루고있는것도 신선하고, 초창기 보여줬던 점프 시스템에 대한 비판 역시 상당히 좋았다.
하지만 역시 점프 연재작인만큼, 슬슬 한계를 보이고있다. 10권정도부터 급격히 재미없어지고, 몰입도가 떨어진 것이다. 독자집계 시스템을 전투력 취급하며 (...) 작품성을 떠나 오로지 집계성적에 목을 매는 패턴도 상당히 지긋지긋하다. 이놈들은 자신의 창작품을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작품으로 취급하는게 아니라 그냥 상품취급하는가 싶은 기분이 들면서. 작가도 자신의 작품을 존중하지 않고있는데, 독자가 과연 그런 생산물을 상품이 아닌 작품으로 취급해야 하는가.
그러다가 루즈해진 스토리에 다시 집중할 수 있도록, 지지부진해진 상황을 살려낸 새로운 전개가 나오는데, 바로 나나미네 토루(七峰透)의 등장.
나나미네 토루는 재능있는 신인으로 등장한다. 어디선가 본 듯 하지만 충격적인 소재와 상당한 작화력으로 나오는데, 이는 주인공들과 엇비슷하다. 그리고 주인공들의 호평을 받으면서 실력을 인정받았지만, 소재와 분위기가 점프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편집진의 방침으로, 신인공모전에서 탈락한다. 그래도 이정도에서는 이해해줄만 하다. 이로서 훌륭한 후배가 등장하나 싶었고, 나나미네 토루가 정식으로 등장하게 된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부터였다.
나나미네 토루를 속이 검은 악역으로 부각한 것이다. 사실 전개상 굳이 이래야 할까 싶은게, 만화를 블로그에 공개해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인터넷 반응을 적극적으로 수렴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까지는 괜찮다. "편집부의 판단이 틀릴 수도 있다. 충분히 대중에게서 인정받을 수 있는 작품이니까, 점프 편집부도 반성 좀 하자"는 메세지를 보내는 선에서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나나미네 토루가 점프가 아닌 애프터눈같은 잡지에 옮기는 정도로 전개되면 얼마나 좋은가.
또한 독자반응을 앙케이트 집계가 아닌 인터넷 실시간 피드백으로 확장했다는 자체도, 바쿠만의 현재 문제점인 "독자 앙케이트에 대한 집착"을 벗어나, 더 넓은 선에서 인기평판을 객관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무대를 제공했지만, 실망스럽게도 바쿠만은 생각과 전혀 다르게 그러한 확장을 허용하지 않았다.
나나미네 토루는 편집자에게 구애받지 않고 인터넷 반응을 적극적으로 수렴한다는 새로운 피드백 발상을 내세웠지만, 바쿠만은 급기야 그걸 부정적으로 발전시킨다. 인터넷에서 50인을 뽑아서 편집자 역할을 진행한다는 것이다.(...) 뭐 만화기에 현실성이 떨어진다고는 비판할 수 없다만, 상당히 납득이 안가는 조치다. 그리고 담당편집자와 기타 점프식 룰을 따르는 만화가들을 선역으로, 나나미네 토루를 악역으로 대립구도로 끝까지 밀고나가며 토루가 결국 안습 자폭 행보를 걷게 된다는 전개는... 결국 점프 편집진에게 당위성을 심어주고, 점프식 룰은 영광이 깃든 깰수 없는 룰이라는 매너리즘에 쉴드를 치는 것이다. 앞으로 보나마나 나나미네 토루가 좌절하고 각성하고 다시 성실하게 편집자 말을 고분고분 들으면서 작품 연재를 진행한다는 전개가 예상된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점이라면 이 사건은 바로 현실에서도 벌어졌던 일이 모티브라는 것.
해당 스토리의 모티브로 추정되는건, 바로 신인작가 이사야마 하지메(諫山 創)의 작품 "진격의 거인". 이 작품은 점프 편집부에게 거절당하고 타 잡지사로 옮겨 연재했지만, 2011 "이 만화가 대단해!"의 1위를 차지하고,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모으며 입소문에 의해 1권이 50만부 이상 팔려나간 작품이다. 꿈도 희망도 없는 암울하고 잔혹한 스토리로, 엄격히 점프의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지만, 편집진에서 데스노트 전례도 있고 하니까 마음만 먹으면 밀어줄 수도 있는 작품이다. 그리고 굳이 일본식으로 분류하면 소년만화는 맞다. 따라서 네티즌들 사이에서 점프 편집부가 안목이 없다는 등 여러가지 혹평을 받고있는 와중에, 바쿠만에서 그 점을 의식하고 점프 쉴드 신공으로 '점프에게 거절당했던 재능있는 신인' 캐릭터를 먹칠 일색으로 묘사하고있는건 정말이지 상당히 치사하다.
바쿠만은 주인공들을 통해 점프의 암흑면을 은근히 비판했던 초창기와는 눈에 띄게 달라지고있다. 주인공들은 어느새 시스템에 완전히 녹아들어갔으며, 시스템의 한계 내에서 작품을 고민하고 만들고있다. 이런 점프식 사고방식은 사실 원피스의 작품성에도 큰 피해를 입혔다. 시도때도없이 코믹한 개그같은것들을 선보이거나, 신선하지 못한 소년공식을 억지로 집어넣으면서 저연령층을 만족시키려 하기때문에, 작가 오다 에이이치로(尾田榮一郎)의 더 큰 폭발의 여지가 있는 재능과 작품으로서의 완성도를 제약하고있기때문이다. 소년만화라는 패턴을 타파하고, 좀 더 다양하고 신선한 내용의 만화를 수렴하고 온라인 피드백을 결합한 새로운 모드로 마케팅할 수 있다면, 아마 일본 메이저 만화는 드래곤볼, 슬램덩크, 란마1/2 등 다양하고 완성도 높은 간판작품들이 분출되었던 황금기 못지 않은 새로운 발전을 이룩하지 않을까 싶다. 황금기의 추억때문에 황금기를 따라가려고 노력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분출점을 찾아야 할 때가 아닐까.
그러고보면 이노우에 다케히코(井上雄彥)가 점프를 떠난 건 너무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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